안녕하세요. 아이브 매거진 송주환입니다. 2020년 들어 첫 번째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 작년 12월에 아이브 매거진 0호 리뷰 컨퍼런스를 개최했습니다. 첫 컨퍼런스라 우선 비공개로 진행했습니다. 앞으로 경험이 쌓이면 뉴스레터 구독자 분들도 초대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초기 구매자 분들은 가장 존중 받아야 될 대상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리뷰 컨퍼런스를 위해 우리는 적절한 리뷰어를 섭외해야 했습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깨어있는 개인 즉, IVE 여야 한다.’ 두 번째, 이번 호 주제와 맞는 ‘주류 속 비주류’여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브 매거진 0호의 인터뷰 4개를 각각 소화할 수 있는 통섭적인 인간이어야 한다.’ 내부 회의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된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안병진 씨입니다. 그는 1967년생으로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뉴욕에 위치한 뉴스쿨 대학원에서 미국 대통령의 가치와 커뮤니케이션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우선 우리는 그가 굉장히 ‘Contemporary’한 지식인이라고 생각합니다. ‘Contemporary’는 ‘동시대의, 당대의’라는 의미를 지니며 보통 패션이나 예술 쪽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입니다. 이 분야들은 유행을 이끄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현실에 근접한 미래’ 정도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항상 현재와 미래를 연결해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최대 장점 중 하나입니다. 이번 리뷰 컨퍼런스에서도 그는 풍부한 사례와 지식들을 인용했고 이것은 그가 동시대의 세계와 함께 숨쉬고 있는 지식인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그를 섭외한 또 한 가지 이유는 그가 ‘Communicator’ 라는 것입니다.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주제와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해줍니다. 쉽게 설명한다는 것은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얼마 전 북저널리즘에서 출간한 ‘트럼프, 붕괴를 완성하다’에서는 ‘버락 오바마’를 악에 흔들리는 ‘배트맨’으로 ‘도널드 트럼프’를 죄책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조커’와 대비시켰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다크나이트’가 단순한 오락 영화가 아닌 미국의 현재 혹은 다가올 미래를 보여주는 영화라는 그의 해석은 창의적이면서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접근법은 듣는 사람의 이해도를 올려줍니다. 이번 리뷰 컨퍼런스에서도 이런 그의 능력은 충분히 발휘되었습니다.
여기서 좀 더 심층적으로 그와 그가 남긴 컨텐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의 궤적과 그에게 큰 영향을 준 ‘뉴스쿨’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 시절,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이며 그 끝은 결국 사회주의 혁명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레닌주의’를 탐독한 사회 학도였던 그는 냉전 이후 뉴욕에 위치한 ‘뉴스쿨’에서 학업을 정진하며 소프트웨어로서의 미국을 직접 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뉴스쿨’은 1919년 미국을 대표하는 실용주의 철학자 존 듀이가 설립한 일종의 대안학교입니다. 존 듀이는 지식을 하나의 도구로 보았고 학생은 그 도구를 운영하고 생성하는 주체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학생이 모든 것에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교육 철학을 주장했는데 그 철학의 산물이 바로 ‘뉴스쿨’입니다. 존 듀이가 뉴스쿨의 뿌리라면 한나 아렌트는 ‘뉴스쿨’의 기둥입니다. ‘뉴스쿨’은 설립 당시부터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온 유대인 교수들이 주축을 이뤘는데 한나 아렌트가 독일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관찰한 후 제시한 ‘악의 평범성’은 당시 유대인 커뮤니티에 큰 파장을 일으킵니다. 악인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속한 조직에 따라 누구도 악을 행할 수 있다는 그녀의 주장에 많은 유대인들이 분노했습니다. 당시 그녀가 받았던 압박과 비난은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의 ‘한나 아렌트’라는 영화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민족에 매몰되기보다는 공적 지식인으로서의 자아를 선택했습니다. ‘뉴스쿨’은 존 듀이로 대표되는 실용성과 한나 아렌트로 대표되는 공공성이 결합된 미래 지향적 교육기관입니다.
안병진 씨는 그곳에서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지식을 흡수하고 생성했습니다. 그의 논문은 최우수 박사논문상인 ‘한나아렌트상’을 받았고 졸업 이후 강의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9.11 사건을 현장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그 후 그는 2003년 37세의 나이로 한국에 컴백합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정치인 노무현 씨가 드라마틱한 과정을 거쳐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아마 그의 눈에는 한국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전환기를 맞이했다고 느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그 이후 정체와 퇴행을 반복했고 그가 생각했던 미래형 시민 정치 역시 잘 구현되지 않았습니다. 박원순, 안철수, 문재인이 함께 부상했던 2012년에는 시민 단체와 정당 안에서 그 개념을 현실화해보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가 과거에 영감을 받았던 미국의 그 소프트웨어조차도 심각한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2003년 이후 그의 활동은 그가 미국에서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가 2011년에 출간했던 ‘다시,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는 그 과정에서 실행과 적용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불완전한 실천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이론을 재구성해나가는 ‘존 듀이’의 실용주의를 대한민국의 비현실적인 현실과 부딪치며 체화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뉴스레터를 통해 그에게 ‘센서’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그의 깨어 있는 감각과 성찰적 태도가 현재의 세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게 해주고 잘못된 방향의 접근에 대한 위험성을 미리 알려주는 경고등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그의 메시지를 항상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인간 안병진을 대학 시절의 ‘안병진 1기’와 유학 시절의 ‘안병진 2기’ 그리고 마지막 한국에 돌아온 후의 ‘안병진 3기’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크게 본다면 ‘안병진 시즌 1’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시즌 2에는 새로운 차원의 변화도 함께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이번에 그와 작업하면서 좀 더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