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한이라는 원석

안녕하세요. 아이브 매거진 송주환입니다.

올해 마지막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 2019년은 저희에게 의미가 큰 한 해였습니다. 꽤 오랫동안 준비했던 매거진을 세상에 처음 선보였고 동시에 아직 감춰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기획자이자 생산자인 아이브의 이름을 걸고 컨텐츠를 선보이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느꼈기 때문에 ‘창간 준비호’라는 변명으로 그것을 정당화했습니다.

혹자들은 ‘린’과 ‘애자일’의 대세인 지금 우선 런칭해서 고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완성해가는 것이 시대에 맞는 길이라고 충고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조차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달성하고 난 이후에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도 안 되어 있으면서 변형부터 할 수는 없습니다. 완성도는 생산자가 가져야 하는 의무이자 미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사이 주목 받는 로컬 숍 연구 매거진인 <브로드컬리>는 우리에게 많은 용기를 주었습니다. 조퇴계 씨의 심지와 혜안 그리고 이지현 씨를 비롯한 나머지 멤버들의 능력과 희생에 우리는 감동받았습니다. 아이브도 그와 같은 브랜드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2020년은 아이브 매거진 창간호 뿐만 아니라 아이브 코퍼레이션의 모든 것을 떳떳하게 공개할 수 있는 그런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오늘 뉴스레터에서 공유할 컨텐츠는 아이브 매거진 창간 준비호 ‘주류 속 비주류’의 마지막 인터뷰인 ‘문명사학자 이병한’ 편입니다. 위의 이병한 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인터뷰 영상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사실 이병한 씨에 대한 뉴스레터를 쓰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이병한 씨를 직접 다시 만날 생각까지 했습니다.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인 그는 지금 뉴질랜드에 있습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쉽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아직 원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어느 정도 사회에서 평가가 내려지고 그 역할도 주어진 나머지 인터뷰이와 달리 이병한 씨는 앞으로의 해야 할 일이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이 글이 그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조심스러웠습니다. 이 뉴스레터를 받으시는 분들은 저의 이런 입장을 이해하신 채로 이 글을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지금 4년 정도의 유라시아 견문을 마치고 국내에서 개벽 2.0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개벽 2.0은 ‘동학’을 개벽 1.0으로 놓고 지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식으로 그 정신을 구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 전에 중국이 답이라고 생각했던 ‘척사파’와 서구가 답이라고 생각했던 ‘개화파’ 사이에 우리가 직접 답을 내야 한다고 주장한 ‘개벽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동학 운동을 일으켰고 3.1운동의 중요한 모태가 되었지만 양 주류의 협공으로 거의 소멸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전쟁 이후 헤게모니를 완전히 장악한 ‘개화파’는 개화 우파인 ‘산업화’와 개화 좌파인 ‘민주화’로 나눠져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와 ‘민주화’로 대표되는 서학 자체가 몰락 중인 이 시점에 그는 개벽 2.0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는 실로 엄청난 야망이 담긴 프로젝트입니다.

우리는 그가 추구하는 방향에는 거의 공감을 합니다. 지금처럼 기존 패러다임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패러다임도 나오지 않아 계속 정체 중인 ‘지체의 시대’에는 고치는 수준을 넘어 새로 만드는 수준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긴 호흡의 그랜드 플랜일수록 튼튼한 기초와 단단한 실행 그리고 유기적인 확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개벽 2.0은 그런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좀 있습니다. 물론 이제 시작했기 때문에 앞으로 많은 부분들이 채워지고 업그레이드되겠지만 그래도 사족으로 앞으로 개선했으면 하는 점을 몇가지 남겨봅니다.

첫째, 브랜드 네이밍입니다. 개벽은 결과를 의미하지 과정이나 방향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 단어는 종교적 색채가 강한 단어입니다. 그 의도와 관계없이 그렇게 한계 지어질 확률이 있습니다. 정말 개벽의 결과를 원한다면 이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맞을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기존 패러다임과의 관계성입니다. 결국 개벽은 정반합의 ‘합’이 새로운 ‘정’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기존 ‘척사파’와 ‘개화파’에서 어떤 것을 정리하고 어떤 것을 발전시킬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종의 후손인 대한 황실문화원의 이원 씨나 4차 산업혁명 위원회의 장병규 씨 같은 사람들과 함께 이 문제를 논의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셋째, 프로젝트의 구체성입니다. 이와 같은 사회 운동은 함께 하는 이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이들이 바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확장판으로 이 프로젝트가 전이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이런 기우 일수도 있는 이야기를 굳이 하는 것은 그가 향후 발광체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책이나 오늘 공유하는 인터뷰를 본 분들은 이해하겠지만 그는 특출난 사람입니다. 한국의 ‘마르코 폴로’이며 ‘그레타 툰베리’입니다.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발산합니다. 하지만 아직 그는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는 아닙니다. 발산 만으로는 폭발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폭발을 위해서는 수렴과 응집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 비로소 발광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가 미래에 역사적인 인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기대와 관심이 그의 앞길에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