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라는 도구

안녕하세요. 아이브 매거진 송주환입니다.

세 번째 아이브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 오늘 뉴스레터에서 공유할 컨텐츠는 아이브 매거진 창간 준비호 ‘주류 속 비주류’의 세 번째 인터뷰인 ‘북한 전문가 란코프’ 편입니다. 위의 란코프 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인터뷰 영상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란코프 교수는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해외에는 최고 레벨의 북한 전문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레벨일까요?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자문을 받은 북한 전문가 5인에 포함합니다. 그는 2017년 <포린폴리시>에서 세상을 바꾼 50대 사상가에 선정되었습니다. 당시 한국인으로는 촛불 혁명으로 대통령이 된 문재인 씨가 유일하게 선정되었습니다. <포린폴리시>는 그를 선정한 이유를 ‘북한을 비이성적으로 간주하는 대부분의 해석과 달리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전문가’라고 설명했습니다. 북한도 그에게 반응했습니다. 2013년 북한 분석 서적인 ‘리얼 노스코리아’가 세상에 나온 이후 그는 한동안 북한의 비자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왜 그의 분석이 이렇게 주목받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대학 시절 데모를 했던 운동권이었습니다. 그는 소련이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살기 좋은 나라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이상적인 국가는 오지 않았고 그 국가는 되려 붕괴해버렸습니다. 소련이 러시아가 된 이후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모국을 떠납니다. 그 후 북한에서 1년, 호주에서 8년, 대한민국에서 20여 년의 시간을 보냅니다. 대학교 때 그의 전공은 중국 역사였고 중간에 한국학으로 전공을 바꿉니다. 그리고 대학원에서는 북한으로 다시 한번 세분화됩니다. 그의 박사 논문은 한국 전쟁 발발 전후에 김일성과 스탈린 사이에 비밀 교신 내용을 분석한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그는 소련에서 자랐고 중국과 북한을 공부했으며 미국의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국민대학교 교수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정말 유용한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의 주장을 듣다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제2차 햇볕 정책을 지지합니다. 이는 우리나라 보수 세력에게 외면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300명이 넘는 탈북자들을 깊게 인터뷰하고 난 후 내린 실증적인 결론이지만 북한에 대한 트라우마가 마음속 깊이 존재하는 보수 세력은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는 북한은 핵을 결코 폐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우리나라 진보 세력에게 외면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북한의 권력 구조와 매커니즘에 대한 분석을 기초로 이와 같은 결론을 냈습니다. 하지만 민족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을 가진 진보 세력은 애써 이를 외면합니다. 그의 주장은 매우 냉정하고 설득력이 있지만 진영 논리에 사로잡힌 우리의 정치권을 그의 주장을 소화할 여력이 없습니다.

얼마 전 종합 편성 방송에서 그가 패널로 나온 모습을 보았습니다. 앵커는 김정은의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마치 내일이라도 죽을 사람인 양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건강이 좋지 않아 보입니다’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란코프 교수에서 던질 질문이 정말 이런 것 밖에 없을까요?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있는 도구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것도 전 세계가 알아보는 도구를 말입니다. 란코프 교수의 인터뷰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국내 정치에 납치된 북한 이슈를 제대로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사실 북한은 아주 가까이 존재하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나라입니다. 우리와 한핏줄을 가진 정이 가는 민족이면서도 구제 불능에 가까운 골치덩이이기도 합니다. 이번 인터뷰가 우리 각자에게 북한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