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작가의 경우는 섭외가 가장 오래 걸렸던 케이스였습니다. 그 섭외 과정 자체는 간명했지만 거기까지 가는데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우선 기획 초기에 요조와 논의한 인터뷰이 조건 중 창작자가 적어도 한 명 이상은 들어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요조의 아이덴티티를 ‘창작자’로 정의했고 ‘창작’이야말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창작’과 ‘창작자’가 그 중요성에 비해 존중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의 시대가 오고 0 아니면 1이 전부인 디지털화가 모든 분야에서 격렬하게 진행되면서 정작 만드는 자보다 그것을 전달하는 자가 더 큰 힘을 가지는 세상이 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음악, 소설, 영화 등 단기간에 그 성공의 성패가 결정되는 창작물을 만드는 사람들은 여기에 더 큰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이 압박이 정작 그 창작물에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성공 신화와 흥행 공식이라는 경제 논리에 기초한 혁신가들이 창작자들의 주도권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습니다.
요조와 최은영 작가는 이런 환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직접 겪고 있는 당사자들입니다. 우리는 만드는 사람들만의 공감대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뮤지션과 소설가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창작이라는 작업을 바라보는 시선과 창작물에 대한 존중 그리고 창작자들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평소 요조는 소설가의 작업 방식에서 많은 위로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뮤지션의 작업이 그들이 바라본 세계를 음악을 통해 함축적이고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면 소설가는 그 세계를 자신의 언어로 다시 건축하는 긴 여정의 창작 작업을 홀로 진행하기 때문에 그 외로움과 불안감을 깊이 공감하는 차원에서 나온 발언일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엔 요조와 최은영 작가는 서로 닮은 구석이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인간 신수진과 인간 최은영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겸손함과 포용력을 가지고 있지만 때로는 나서야 할 때 분명히 나서는 강단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요조의 페미니스트 선언이나 최은영 작가의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 및 사과 요구는 바로 그런 사례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회의주의자들입니다. 회의주의는 비관에 기초한 염세주의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회의주의는 절대적인 것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확인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일종의 점진주의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의 시대’의 세 가지 열쇠 중 ‘성찰’과 연결됩니다.
‘문학동네’를 통해 최은영 작가에 대한 섭외 메일을 보낸 후 기다림의 시간이 꽤 오래 진행되었습니다. ‘아! 거절인 건가’ 하는 생각에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편집자의 핸드폰 번호를 구해서 직접 연락을 했고 당시 소설 ‘밝은 밤’의 최종 탈고 작업이 진행 중이어서 섭외가 작가에게 전달이 안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브매거진 창간호 작업을 하면서 ‘이 만남은 운명인가?’ 했던 장면들이 몇개 있었는데 이 장면 역시 거기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인터뷰이 제안이 다시 전달이 되었고 최은영 작가 역시 요조에 대한 호감을 이야기하며 최종 승낙을 했습니다.
우리는 최은영 작가의 창작물과 그 작업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었고 요조는 중간중간에 최은영 작가의 작품 내용을 낭독하고 그 내용에 기반한 질문들을 이어가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그리고 마치 대학교 때 스터디를 하듯이 최은영 작가의 모든 작품을 함께 탐독했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개인적으로도 가까운 주변의 사람들과 그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0도 1도 아닌 그 사이에 있는 아날로그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최은영 작가의 작품들을 통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디 이 인터뷰가 최은영 작가의 창작물들과 연결될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이 개인적 경험을 혼자 가지고 있지 않고 세상에 널리 공유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김소연이라는 솔루션
MOT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Moments Of Truth의 약자로 ‘진실의 순간’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경영학에서는 이 단어를 소비자가 구매를 결정하는 15초 남짓의 순간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뉴닉의 김소연 대표를 인터뷰이로 섭외하게 된데에는 결정적인 MOT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요조에게 인터뷰이 중 기업인을 꼭 넣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요조는 뉴닉의 김소연 대표를 제일 먼저 추천했습니다. 우리는 김소연 대표를 포함한 몇 명의 기업인을 섭외 리스트에 올렸고 그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가 김소연 대표에 대한 MOT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2021년 1월 12일에 방영된 EBS 비즈니스리뷰 5편 ‘뉴스도 힙해질 수 있다 – 김소연, 빈다은’에서 ‘한국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한다는 것’이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그것은 엄청난 특권이며 그 특별한 권리를 경험하는 것에 대해 책임감도 함께 잊지 않고 창업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답변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이것은 큰 의미가 있는 답변이었습니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인도 그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공적 개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업인 버전의 ‘개인의 시대’와 연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법인이 개인 수준의 책임감을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요조에게 관련된 이야기를 전하며 꼭 인터뷰가 성사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전했고 그래서 김소연 대표의 경우에는 요조가 직접 섭외를 진행한 케이스가 되었습니다. 둘의 우정은 사회적 지위나 직업 그리고 나이와 관계없이 형성된 서로에 대한 호감 그 자체였으며 옆에서 관찰하기에 신기함 반 부러움 반인 관계였습니다.
인터뷰이가 결정되기 전 ‘개인의 시대’에 대한 주제 토론 시간에 우리는 요조에게 Integrity이라는 단어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적이 있었습니다. ‘진실성’이라는 단어로 해석되기도 하는 이 영단어는 한국어에는 아직 딱 맞는 표현이 없는 본질적이면서도 동시에 생산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개인의 시대’가 오기 위해서는 Integrity가 중요하며 특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Integrity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요조는 이 단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자신이 얼마 전에 친구로부터 그 단어를 선물 받았다는 다소 놀라운 이야기를 털어놨습니다. ‘너에게 딱 맞는 영어 단어 있는데 그걸 선물하고 싶어’ 라고 하면서 그 영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알려줬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인터뷰가 최종 편집된 후 그 친구는 바로 김소연 대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조와 친분이 두터워지면서 서로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꽤 많아졌는데 아이브와 요조의 미래와는 별개로 김소연 대표의 미래를 둘이 함께 이야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당사자가 없는 상태에서 그 사람의 미래를 오랫동안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상황인데 그만큼 요조가 가진 김소연 대표에 대한 애정이 깊고 김소연 대표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 역시 상당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조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창작자이고 김소연 대표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가입니다. 이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둘의 우정이 우리 사회에 Integrity이라는 개념이 좀 더 활성화되는데 쓰일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인터뷰 컨텐츠가 어떠한계기나 기여를 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김민희라는 태도
김민희 편집장에 대해서는 우선 소문으로 먼저 접했습니다. ‘인터뷰’라는 장르와 ‘세대’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아는 지인에게 어느 날 ‘혹시 김민희 편집장이라고 아세요? 이 분도 X 세대 이야기 하시던데?’라는 특급 정보를 얻게 되었습니다.
평소 X 세대가 개인주의를 문화로서 도입한 최초의 세대이고 아직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으로서 귀가 번쩍이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쓴 책과 인터뷰를 탐독한 후 만나야 할 사람 리스트에 올려놓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김민희 편집장이 우리의 인터뷰이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이 분이 요조를 인터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명을 향한 한없이 무해한 시선’이라는 탁월한 제목으로 완성된 ‘TOPCLASS' 2021년 5월 호 인터뷰는 김민희 편집장을 인터뷰이로 섭외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컨텐츠입니다.
우리는 요조에 대해 어느 정도 공부를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이 인터뷰를 통해 김민희 편집장의 인터뷰 실력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요조의 동생 신수현 씨에 대한 이야기는 쉽지 않은 주제이지만 지금의 요조를 이해하기 위해서 꼭 들어가야 하는 부분인데 절제되면서도 분명하게 그 내용들이 잘 담겨 있어 솔직히 좀 감탄했습니다.
요조 역시 그 인터뷰를 자신이 최근에 한 인터뷰 중 최고의 인터뷰로 뽑았기 때문에 그 기획을 좀 더 확장해 보고 싶었고 그래서 위치를 바꿔 인터뷰어 요조와 인터뷰이 김민희가 만나는 자리가 성사된 것입니다.
김민희 편집장과 2시간 정도 사전 인터뷰를 하며 받은 느낌은 긍정적 의미의 ‘한국적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박노해 씨가 <걷는 독서>에서 이야기한 3단(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에 걸맞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심으로 경청해 주고 시선도 따뜻했지만 관점은 명확했고 정리는 깔끔했습니다. 그래서 그 만남 이후 우리는 ‘따뜻한 미니멀리스트’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습니다.
창작자 요조와 편집자 김민희는 참 괜찮은 조합인 것 같다는 생각을 인터뷰를 보는 내내 하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인생 속에서 걸어온 길이 대조되지만 상대방의 이야기에 ‘이거 완전 나랑 똑같은데’라는 눈빛을 나누는 모습을 여러 차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읽었고 그 결과 상당히 진솔한 문답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 광경을 뿌듯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앞으로 그들이 또 무슨 일을 함께 하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지금의 인터뷰가 그 계기가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가 되고자 하는 간절함은 없지만 무엇인가를 알고자 하는 호기심은 충만한 그들이기에 앞으로 무슨 일을 벌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요조라는 프리즘
뮤지션이자 작가인 ‘요조’에게 처음 섭외 메일을 보낸 것은 2020년 10월 5일이었습니다. 설득을 위한 첫 만남은 2020년 11월 10일, 첫 미팅은 2021년 1월 27일, 첫 촬영은 2021년 3월 21일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촬영은 2021년 11월 11일에 있었습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와 많은 교류를 했습니다. 주제에 관한 이야기, 사람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삶에 관한 이야기들을 서로 나눴습니다. 공적인 ‘계약’으로 관계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사적인 ‘친구’라고 표현할 수 있는 사이가 된 것 같습니다.
왜 ‘요조’였을까? 아마 초기에는 그 이유를 열개도 넘게 바로 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이것도 인연이고 운명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이유를 아직 유추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알면서 왜 물어’의 의미가 담긴 눈빛을 보내게 됩니다. ‘왜 요조여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에 점점 성의가 없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합니다. 그도 우리도 ‘개인의 시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는 ‘개인’에 우리는 ‘시대’에 좀 더 초점을 맞추지만 그것은 서로 극복 가능한 차이입니다. 아니 발전 지향적인 차이입니다.
‘요조’에 대해서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하는게 있습니다. 요조는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며 서점을 운영하고 가끔 영화에도 출연합니다. 그리고 ‘인터뷰어’나 ‘모더레이터’ 같은 외부 활동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다방면의 걸쳐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 맞지만 그는 나름대로의 원칙과 지향점 그리고 우선순위를 가진 창작자입니다.
2013년 발간된 요조의 첫 책 ‘요조, 기타 등등’은 지금까지 그가 만든 15곡의 노래와 다른 뮤지션과 협업한 5곡 그리고 그가 추천하는 10곡 총 30곡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와 기타 악보를 담고 있습니다. 2015년에 시작한 ‘책방무사’는 더 좋은 가사를 쓰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서점입니다. 2017년에 발매한 EP 나.아.당.궁(나는 아직도 당신이 궁금하여 자다가도 일어납니다.)는 단편 영화를 제작, 감독하고 그 OST를 앨범으로 낸 기획입니다. 2018년 여성신문 인터뷰에서 밝힌 페미니스트 선언은 이 사회가 ‘요조’라는 브랜드를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일종의 문제제기입니다. 이렇게 그동안 좋은 인상을 받았던 ‘요조’의 활동을 정리하다 보니 ‘왜 요조여야 하는가’가 다시 기억에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그의 지속하고자 하는 일관성과 발전하고자 하는 향상성에 매료되었었습니다.
우리는 ‘요조’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심지어 섭외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요조’가 아닌 ‘신수진’이라는 본명을 부르기를 고집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역사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이번 프로젝트를 ‘요조’에만 한정하고 싶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요조’ 이전에 ‘신수진’, ‘요조’ 이후에 ‘신요조’까지 모두 담고 싶다고 강변했습니다. 다행히 그렇게 프로젝트가 시작이 됐고 초기의 그 방향 설정 덕에 좀 더 입체적으로 그와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인터뷰는 인터뷰어 ‘요조’가 인터뷰이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된 프리뷰 형식의 인터뷰입니다. 우리는 이 인터뷰에서 ‘요조’를 ‘수진’이라고 호칭했습니다. ‘요조’라는 활동명을 가진 ‘신수진’은 대화를 부르는 인물입니다. 우리가 중고등학생 시절에 도서관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친구와 나눴던 끝이 나지 않던 대화의 향수를 다시 생각나게 합니다. 우리는 그런 ‘신수진’을 세상에 소개하고 거기에 우리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방향성 한스푼을 추가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프리뷰는 바로 그 결과물의 시작입니다.
안병진이라는 센서
안녕하세요. 아이브 매거진 송주환입니다. 2020년 들어 첫 번째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 작년 12월에 아이브 매거진 0호 리뷰 컨퍼런스를 개최했습니다. 첫 컨퍼런스라 우선 비공개로 진행했습니다. 앞으로 경험이 쌓이면 뉴스레터 구독자 분들도 초대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초기 구매자 분들은 가장 존중 받아야 될 대상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리뷰 컨퍼런스를 위해 우리는 적절한 리뷰어를 섭외해야 했습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깨어있는 개인 즉, IVE 여야 한다.’ 두 번째, 이번 호 주제와 맞는 ‘주류 속 비주류’여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브 매거진 0호의 인터뷰 4개를 각각 소화할 수 있는 통섭적인 인간이어야 한다.’ 내부 회의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된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안병진 씨입니다. 그는 1967년생으로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뉴욕에 위치한 뉴스쿨 대학원에서 미국 대통령의 가치와 커뮤니케이션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우선 우리는 그가 굉장히 ‘Contemporary’한 지식인이라고 생각합니다. ‘Contemporary’는 ‘동시대의, 당대의’라는 의미를 지니며 보통 패션이나 예술 쪽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입니다. 이 분야들은 유행을 이끄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현실에 근접한 미래’ 정도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항상 현재와 미래를 연결해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최대 장점 중 하나입니다. 이번 리뷰 컨퍼런스에서도 그는 풍부한 사례와 지식들을 인용했고 이것은 그가 동시대의 세계와 함께 숨쉬고 있는 지식인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그를 섭외한 또 한 가지 이유는 그가 ‘Communicator’ 라는 것입니다.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주제와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해줍니다. 쉽게 설명한다는 것은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얼마 전 북저널리즘에서 출간한 ‘트럼프, 붕괴를 완성하다’에서는 ‘버락 오바마’를 악에 흔들리는 ‘배트맨’으로 ‘도널드 트럼프’를 죄책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조커’와 대비시켰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다크나이트’가 단순한 오락 영화가 아닌 미국의 현재 혹은 다가올 미래를 보여주는 영화라는 그의 해석은 창의적이면서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접근법은 듣는 사람의 이해도를 올려줍니다. 이번 리뷰 컨퍼런스에서도 이런 그의 능력은 충분히 발휘되었습니다.
여기서 좀 더 심층적으로 그와 그가 남긴 컨텐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의 궤적과 그에게 큰 영향을 준 ‘뉴스쿨’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 시절,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이며 그 끝은 결국 사회주의 혁명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레닌주의’를 탐독한 사회 학도였던 그는 냉전 이후 뉴욕에 위치한 ‘뉴스쿨’에서 학업을 정진하며 소프트웨어로서의 미국을 직접 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뉴스쿨’은 1919년 미국을 대표하는 실용주의 철학자 존 듀이가 설립한 일종의 대안학교입니다. 존 듀이는 지식을 하나의 도구로 보았고 학생은 그 도구를 운영하고 생성하는 주체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학생이 모든 것에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교육 철학을 주장했는데 그 철학의 산물이 바로 ‘뉴스쿨’입니다. 존 듀이가 뉴스쿨의 뿌리라면 한나 아렌트는 ‘뉴스쿨’의 기둥입니다. ‘뉴스쿨’은 설립 당시부터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온 유대인 교수들이 주축을 이뤘는데 한나 아렌트가 독일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관찰한 후 제시한 ‘악의 평범성’은 당시 유대인 커뮤니티에 큰 파장을 일으킵니다. 악인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속한 조직에 따라 누구도 악을 행할 수 있다는 그녀의 주장에 많은 유대인들이 분노했습니다. 당시 그녀가 받았던 압박과 비난은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의 ‘한나 아렌트’라는 영화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민족에 매몰되기보다는 공적 지식인으로서의 자아를 선택했습니다. ‘뉴스쿨’은 존 듀이로 대표되는 실용성과 한나 아렌트로 대표되는 공공성이 결합된 미래 지향적 교육기관입니다.
안병진 씨는 그곳에서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지식을 흡수하고 생성했습니다. 그의 논문은 최우수 박사논문상인 ‘한나아렌트상’을 받았고 졸업 이후 강의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9.11 사건을 현장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그 후 그는 2003년 37세의 나이로 한국에 컴백합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정치인 노무현 씨가 드라마틱한 과정을 거쳐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아마 그의 눈에는 한국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전환기를 맞이했다고 느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그 이후 정체와 퇴행을 반복했고 그가 생각했던 미래형 시민 정치 역시 잘 구현되지 않았습니다. 박원순, 안철수, 문재인이 함께 부상했던 2012년에는 시민 단체와 정당 안에서 그 개념을 현실화해보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가 과거에 영감을 받았던 미국의 그 소프트웨어조차도 심각한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2003년 이후 그의 활동은 그가 미국에서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가 2011년에 출간했던 ‘다시,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는 그 과정에서 실행과 적용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불완전한 실천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이론을 재구성해나가는 ‘존 듀이’의 실용주의를 대한민국의 비현실적인 현실과 부딪치며 체화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뉴스레터를 통해 그에게 ‘센서’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그의 깨어 있는 감각과 성찰적 태도가 현재의 세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게 해주고 잘못된 방향의 접근에 대한 위험성을 미리 알려주는 경고등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그의 메시지를 항상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인간 안병진을 대학 시절의 ‘안병진 1기’와 유학 시절의 ‘안병진 2기’ 그리고 마지막 한국에 돌아온 후의 ‘안병진 3기’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크게 본다면 ‘안병진 시즌 1’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시즌 2에는 새로운 차원의 변화도 함께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이번에 그와 작업하면서 좀 더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이병한이라는 원석
안녕하세요. 아이브 매거진 송주환입니다.
올해 마지막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 2019년은 저희에게 의미가 큰 한 해였습니다. 꽤 오랫동안 준비했던 매거진을 세상에 처음 선보였고 동시에 아직 감춰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기획자이자 생산자인 아이브의 이름을 걸고 컨텐츠를 선보이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느꼈기 때문에 ‘창간 준비호’라는 변명으로 그것을 정당화했습니다.
혹자들은 ‘린’과 ‘애자일’의 대세인 지금 우선 런칭해서 고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완성해가는 것이 시대에 맞는 길이라고 충고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조차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달성하고 난 이후에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도 안 되어 있으면서 변형부터 할 수는 없습니다. 완성도는 생산자가 가져야 하는 의무이자 미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사이 주목 받는 로컬 숍 연구 매거진인 <브로드컬리>는 우리에게 많은 용기를 주었습니다. 조퇴계 씨의 심지와 혜안 그리고 이지현 씨를 비롯한 나머지 멤버들의 능력과 희생에 우리는 감동받았습니다. 아이브도 그와 같은 브랜드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2020년은 아이브 매거진 창간호 뿐만 아니라 아이브 코퍼레이션의 모든 것을 떳떳하게 공개할 수 있는 그런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오늘 뉴스레터에서 공유할 컨텐츠는 아이브 매거진 창간 준비호 ‘주류 속 비주류’의 마지막 인터뷰인 ‘문명사학자 이병한’ 편입니다. 위의 이병한 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인터뷰 영상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사실 이병한 씨에 대한 뉴스레터를 쓰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이병한 씨를 직접 다시 만날 생각까지 했습니다.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인 그는 지금 뉴질랜드에 있습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쉽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아직 원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어느 정도 사회에서 평가가 내려지고 그 역할도 주어진 나머지 인터뷰이와 달리 이병한 씨는 앞으로의 해야 할 일이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이 글이 그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조심스러웠습니다. 이 뉴스레터를 받으시는 분들은 저의 이런 입장을 이해하신 채로 이 글을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지금 4년 정도의 유라시아 견문을 마치고 국내에서 개벽 2.0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개벽 2.0은 ‘동학’을 개벽 1.0으로 놓고 지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식으로 그 정신을 구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 전에 중국이 답이라고 생각했던 ‘척사파’와 서구가 답이라고 생각했던 ‘개화파’ 사이에 우리가 직접 답을 내야 한다고 주장한 ‘개벽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동학 운동을 일으켰고 3.1운동의 중요한 모태가 되었지만 양 주류의 협공으로 거의 소멸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전쟁 이후 헤게모니를 완전히 장악한 ‘개화파’는 개화 우파인 ‘산업화’와 개화 좌파인 ‘민주화’로 나눠져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와 ‘민주화’로 대표되는 서학 자체가 몰락 중인 이 시점에 그는 개벽 2.0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는 실로 엄청난 야망이 담긴 프로젝트입니다.
우리는 그가 추구하는 방향에는 거의 공감을 합니다. 지금처럼 기존 패러다임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패러다임도 나오지 않아 계속 정체 중인 ‘지체의 시대’에는 고치는 수준을 넘어 새로 만드는 수준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긴 호흡의 그랜드 플랜일수록 튼튼한 기초와 단단한 실행 그리고 유기적인 확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개벽 2.0은 그런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좀 있습니다. 물론 이제 시작했기 때문에 앞으로 많은 부분들이 채워지고 업그레이드되겠지만 그래도 사족으로 앞으로 개선했으면 하는 점을 몇가지 남겨봅니다.
첫째, 브랜드 네이밍입니다. 개벽은 결과를 의미하지 과정이나 방향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 단어는 종교적 색채가 강한 단어입니다. 그 의도와 관계없이 그렇게 한계 지어질 확률이 있습니다. 정말 개벽의 결과를 원한다면 이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맞을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기존 패러다임과의 관계성입니다. 결국 개벽은 정반합의 ‘합’이 새로운 ‘정’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기존 ‘척사파’와 ‘개화파’에서 어떤 것을 정리하고 어떤 것을 발전시킬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종의 후손인 대한 황실문화원의 이원 씨나 4차 산업혁명 위원회의 장병규 씨 같은 사람들과 함께 이 문제를 논의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셋째, 프로젝트의 구체성입니다. 이와 같은 사회 운동은 함께 하는 이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이들이 바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확장판으로 이 프로젝트가 전이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이런 기우 일수도 있는 이야기를 굳이 하는 것은 그가 향후 발광체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책이나 오늘 공유하는 인터뷰를 본 분들은 이해하겠지만 그는 특출난 사람입니다. 한국의 ‘마르코 폴로’이며 ‘그레타 툰베리’입니다.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발산합니다. 하지만 아직 그는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는 아닙니다. 발산 만으로는 폭발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폭발을 위해서는 수렴과 응집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 비로소 발광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가 미래에 역사적인 인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기대와 관심이 그의 앞길에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란코프라는 도구
안녕하세요. 아이브 매거진 송주환입니다.
세 번째 아이브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 오늘 뉴스레터에서 공유할 컨텐츠는 아이브 매거진 창간 준비호 ‘주류 속 비주류’의 세 번째 인터뷰인 ‘북한 전문가 란코프’ 편입니다. 위의 란코프 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인터뷰 영상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란코프 교수는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해외에는 최고 레벨의 북한 전문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레벨일까요?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자문을 받은 북한 전문가 5인에 포함합니다. 그는 2017년 <포린폴리시>에서 세상을 바꾼 50대 사상가에 선정되었습니다. 당시 한국인으로는 촛불 혁명으로 대통령이 된 문재인 씨가 유일하게 선정되었습니다. <포린폴리시>는 그를 선정한 이유를 ‘북한을 비이성적으로 간주하는 대부분의 해석과 달리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전문가’라고 설명했습니다. 북한도 그에게 반응했습니다. 2013년 북한 분석 서적인 ‘리얼 노스코리아’가 세상에 나온 이후 그는 한동안 북한의 비자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왜 그의 분석이 이렇게 주목받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대학 시절 데모를 했던 운동권이었습니다. 그는 소련이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살기 좋은 나라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이상적인 국가는 오지 않았고 그 국가는 되려 붕괴해버렸습니다. 소련이 러시아가 된 이후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모국을 떠납니다. 그 후 북한에서 1년, 호주에서 8년, 대한민국에서 20여 년의 시간을 보냅니다. 대학교 때 그의 전공은 중국 역사였고 중간에 한국학으로 전공을 바꿉니다. 그리고 대학원에서는 북한으로 다시 한번 세분화됩니다. 그의 박사 논문은 한국 전쟁 발발 전후에 김일성과 스탈린 사이에 비밀 교신 내용을 분석한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그는 소련에서 자랐고 중국과 북한을 공부했으며 미국의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국민대학교 교수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정말 유용한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의 주장을 듣다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제2차 햇볕 정책을 지지합니다. 이는 우리나라 보수 세력에게 외면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300명이 넘는 탈북자들을 깊게 인터뷰하고 난 후 내린 실증적인 결론이지만 북한에 대한 트라우마가 마음속 깊이 존재하는 보수 세력은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는 북한은 핵을 결코 폐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우리나라 진보 세력에게 외면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북한의 권력 구조와 매커니즘에 대한 분석을 기초로 이와 같은 결론을 냈습니다. 하지만 민족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을 가진 진보 세력은 애써 이를 외면합니다. 그의 주장은 매우 냉정하고 설득력이 있지만 진영 논리에 사로잡힌 우리의 정치권을 그의 주장을 소화할 여력이 없습니다.
얼마 전 종합 편성 방송에서 그가 패널로 나온 모습을 보았습니다. 앵커는 김정은의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마치 내일이라도 죽을 사람인 양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건강이 좋지 않아 보입니다’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란코프 교수에서 던질 질문이 정말 이런 것 밖에 없을까요?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있는 도구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것도 전 세계가 알아보는 도구를 말입니다. 란코프 교수의 인터뷰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국내 정치에 납치된 북한 이슈를 제대로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사실 북한은 아주 가까이 존재하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나라입니다. 우리와 한핏줄을 가진 정이 가는 민족이면서도 구제 불능에 가까운 골치덩이이기도 합니다. 이번 인터뷰가 우리 각자에게 북한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성한용이라는 추
안녕하세요. 아이브 매거진 송주환입니다.
두 번째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 오늘 뉴스레터에서 공유할 콘텐츠는 아이브 매거진 창간 준비호 ‘주류 속 비주류’의 두 번째 인터뷰인 ‘저널리스트 성한용’ 편입니다. 위의 성한용 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인터뷰 영상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성한용 씨와의 인터뷰는 매거진 버전과 조금 다릅니다. 매거진에는 정치적 주제가 주를 이뤘지만 영상 버전에는 미디어에 대한 이슈도 포함되었습니다. 매거진에서는 미디어 전문가 강정수 씨와 겹쳐 편집된 부분이 있었지만 영상 버전에서는 그 부분들을 살렸습니다. 기자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점들을 좀 더 생생하게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성한용 씨의 이미지나 목소리는 차분하고 부드럽습니다. 그래서 자칫 그의 메시지도 그럴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가 쓴 칼럼이나 인터뷰를 보신 분들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이다. 안철수 원장이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세력의 재집권을 원하지 않는다면 대선후보 자리를 비켜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다른 주자들에게 공간이 열린다. 그리고 안 원장도 계속 존경받으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요행을 바라면 안 된다.
[성한용 칼럼] 안철수 대통령은 없다 / 2012.05.28
위의 칼럼은 안철수 씨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에 나온 칼럼입니다. 지금에야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그때는 사실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한겨레신문 내부에서조차 동요가 있었던 칼럼입니다. 저널리스트로서 해야 할 이야기는 꼭 해야 한다는 직업 정신이 느껴지는 칼럼입니다.
일단, 돈을 많이 벌려면 기자를 하면 안됩니다. 기자는 돈 하고는 인연이 멀지요. 기자로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이 있다면, 이 세상, 작게는 자기가 사는 공동체의 잘못된 것, 부패한 시스템을 바로잡고, 역사의 중요한 현장을 기록하고, 기득권을 감시·비판하는 등 공무원은 아니지만 공적인 시스템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담당할 때 오는 보람 같은 것이겠네요.
[나는 서강인] 한국 언론의 역사가 되다, 성한용 동문 / 2018.09.28
위의 인터뷰는 그가 기자를 꿈꾸는 모교 후배들에게 남기는 메시지입니다. 그는 돈 문제를 가장 먼저 이야기합니다. 이것 역시 그의 가치관을 잘 들어내는 인터뷰입니다. 그는 언론이 부패하고 그 과정에서 기자 정신이 많이 사라진 것에 대한 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광화문 집회에 가 볼 생각을 한 것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2016년에서 2017년으로 넘어가는 그 겨울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던 촛불집회와 무엇이 다른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퇴진과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요구하며 서울역 앞, 덕수궁 앞, 광화문 사거리에 매주 줄기차게 모이는 태극기 부대와는 또 무엇이 다른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한겨레신문]한국당 장외집회 직접 가보니 / 2019.04.28
위의 기사는 그가 보수 집회를 실제로 가서 관찰한 후에 쓴 기사입니다. 현장을 중시하는 기자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기사입니다. 그는 한겨레신문 내에서 최고참 기자 중 한 명이지만 지금도 선글라스에 모자를 쓰고 여러 집회를 관찰하러 다닙니다. 그의 기사가 현실에 맞닿아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면서 그의 칼럼과 인터뷰 그리고 기사를 직접 소개한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저널리스트로서의 균형 감각과 직업윤리를 그의 콘텐츠를 통해서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대한민국의 진보를 대표하는 언론사에서 균형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점은 우리가 그를 인터뷰이를 섭외한 가장 큰 이유입니다.
미디어 전문가 강정수 씨는 우리와의 인터뷰에서 성한용 씨를 바람직한 사례로 지칭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미국의 기자는 50대가 황금기다. 어려운 내용도 쉽게 쓰고 통찰력 있는 접근으로 어젠다를 발굴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자들은 50대가 되면 관리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기자가 기사를 더 이상 안 쓴다면 기자라고 할 수 있나? 이것은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40~50대의 스마트한 기자와 20~30대 열정적인 기획자를 묶어 존재감 있는 미국의 ‘악시오스(AXOIS)’ 같은 뉴스 스타트업 미디어를 만들어보고 싶다.”
우리 역시 한국의 기자들이 좀 더 브랜드화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 언론의 기자나 칼럼니스트처럼 자신이 집중하는 어젠다와 솔루션을 담은 단행본도 내고 관련 활동들도 더 활발하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그것이 너무 개인 브랜딩 위주로 흘러가면 안 되겠지만 우리나라 미디어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점들 때문에 기자 개개인들이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성한용 씨와의 인터뷰는 우리에게 ‘미디어’라는 뜨거운 주제를 숙제로 안겨준 시간이었습니다. 조만간 아이브 매거진에서도 이 주제를 한번 다뤄볼 생각입니다.
주진형이라는 개인
안녕하세요 아이브 매거진 송주환입니다.
첫번째 뉴스레터를 보내 드립니다. 오늘 뉴스레터에서 공유할 컨텐츠는 아이브 매거진 창간준비호 ‘주류 속 비주류’의 첫번째 인터뷰인 ‘시장주의자 주진형’ 편입니다. 위의 주진형 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인터뷰 영상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주진형 씨와의 인터뷰는 2번 진행되었고 총 5시간 정도 분량이었습니다. 매거진에는 이중 50% 정도가 7편으로 나눠져 아이브 리뷰와 함께 담겼으며 영상으로는 20% 정도의 내용이 리뷰 없이 4편으로 나눠서 편집되었습니다. 인터뷰의 전체적인 내용은 ‘자본주의의 건강성’과 ‘재벌 개혁의 당위성’이 주를 이뤘습니다.
주진형 씨와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우리는 앞으로 아이브를 운영할 때 고려해야 할 두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얻었습니다.
우선 첫번째로는 컨텐츠에 대한 부분입니다. 주진형 씨는 결코 문제를 제기하는 정도에서 말을 끝맺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문제와 그 문제가 생겨난 과거의 원인 그리고 이 문제가 미래에 끼칠 영향까지 함께 고민하고 그 안에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모습에 우리는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접근 방식이 굉장히 입체적이고 실용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의 끊임없는 호기심과 철저한 자기 객관화 능력이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우리 매체가 벤치마킹을 해야 할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로는 아이덴티티에 대한 부분입니다. 주진형 씨는 지금까지 우리가 만난 비져너리들 중 가장 ‘개인’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아이브가 ‘개인’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브랜드이지만 아직까지 이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주진형 씨와의 인터뷰 이후 여기에 대한 힌트를 살짝 얻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진형 씨에게 우리는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었지만 쉽게 친해질 수는 없었습니다. 두 주체 사이에 적절한 공간이 유지되었습니다. 다가오지도 않고 멀어지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주의’의 핵심은 개별성 그 자체가 아니라 개별적인 주체가 함께 공존하는 상태인 것임을 말입니다. ‘개인’이 아니라 ‘개개인’이 핵심입니다.
우리가 얻은 이 시사점들은 향후 창간호에서 리포트 형태로 좀 더 발전시켜볼 생각입니다. 주진형 씨와 인터뷰를 컨텐츠화 한 이후에 꽤 많은 분들에게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어떤 분은 너무 좋아했고 어떤 분은 너무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는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에서 논쟁적인 인물입니다. 궁금함을 일으키고 매력을 발산합니다. 우리 역시 이 인터뷰를 준비하고 진행하고 또 정리하면서 그에게 상당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 매력을 우리 매체를 통해 여러분도 함께 경험하셨으면 합니다.